2025.08.22
아버지가 팔순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불과 2개월전 팔순 잔치라며 그래도 가족이 최대한 모여서 식사를 같이 할때도 조금은 걸어 다니셨는데, 2개월만에 이렇게 돌아가시고 말았다.
아버지는 내과적으로 여러 곳이 편치 않으셨다.
당뇨, 고혈압, 심장, 신장... 모두 좋지 않았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좋지 못한 것이 바로 폐에 의한 호흡기 문제였다.
코로나가 한창인 시절 아버지는 이미 폐의 기능을 약 30%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이동 정도는 하실 수 있었다. 물론 그때마다 호흡이 엄청 힘들다고는 하셨지만.
1년, 2년 점점 시간이 지나며 호흡기는 점차 나빠졌고, 병원에서도 그 연세에 그 질환을 가지고 계시면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하였기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진 못하였다.
그래서 생전 사용해 본적도 없는 호흡기 의료기를 렌탈하여 집에 비치해 놓기도 했다.
그러던 중 본격적인 문제가 발생한 것은 올해 7월 초.
아버지와 달리 무척이나 건강하셨던 어머니가 무리한 움직임과 과한 물리치료에 의해 엉치뼈가 바스러지는 사고를 당하셨다.
그때 어머니를 너무 걱정하셨던 것일까.
아버지도 갑자기 허리와 왼쪽 다리에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셨다.
생각치도 못했던 부모님 두분 모두 건강의 문제가 발생하여 동시에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문제는 바로 이때부터였다. 바로 병원 입원의 어려움.
의료 대란이다 뭐다, 응급실에서 환자 거부를 하여 응급차 안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발생한다는 뉴스를 봤을 때 설마 그런 문제를 우리가 겪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물론 약간의 걱정은 있었지만 정말 이렇게까지 심할 줄은 몰랐다.
어머니의 경우 시술은 비교적 간단했다.
무너진 엉치뼈 부분에 급속으로 굳는 시멘트와 같은 물질을 도포하면 거진 문제없이 쉽게 해결이 된다고 한다.
문제는 그 시술을 위해서는 반드시 15일 이상의 입원을 해야만 시술을 해줄 수가 있다고 한다.
뭐 법이 그렇게 바뀌었단다. 그래 뭐 시술하면 큰 문제없이 간단하게 일상 생활로 돌아올 수 있다고 하니 그정도야.
시술 전 15일간 아예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기에 간병인을 구해 꽤 많은 지출이 발생했지만, 다행히 결과적으로 어머니는 지금 건강하게 회복하셨다.
다만 아버지는 어머니와 떨어져서 지내본 적이 없는 분이였고, 이미 건강도 오랜기간 좋지 않았으며, 현재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계셨음에도 응급실에서 별다른 이상 증상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입원시켜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극심한 고통에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누웠을 때도 계속 고통이 발생하는 협착증으로 생각되었는데, 병원에서는 그걸로는 절대 입원을 못시켜주겠다는 입장만 고수하였기에 이 협착증 해결을 위한 주사 시술 전까지 병원을 3군데를 옮겼다.
이러면서 점차 아버지의 폐쪽 건강은 나날이 나빠지고 있었다.
그냥 처음부터 협착증 해결을 위한 주사 시술만 들어갔다면 빠르게 해결될 문제였는데, 너도 나도 다 입원시켜주지 않겠다며 거부한 탓에 무리한 병원 이동으로 점차 건강이 나빠진 것이다.
실제 주사 시술은 20분도 걸리지 않고 조치가 끝났고, 그 주사 시술 이후 아버지의 통증은 바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 주사 시술을 위해 여러 병원에서 불필요하게 보내며 건강만 악화시킨 시기가 약 1달이였다.
분명히 호흡기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다 알고 있는 이제까지 계속 다닌 대형 병원이였음에도, 응급실에서는 절대 해줄 수 없다는 입장만 고수했다.
어처구니 없는 것은 겨우 아는 사람들 통해 통해 그 병원에 아는 사람에게 부탁했더니 바로 입원을 시켜줬다는 점이다.
정말 우리나라는 인맥이 없으면 큰일을 할 수 없구나라는걸 뼈저리게 느낀 계기였다.
그렇게 화내며 절대 입원 안시키겠다던 응급실 의사가 인맥을 통해 전달받으니 군소리없이 입원을 시켜주더라...하
어쨌든 그렇게 고통을 호소한지 한달만에 주사 시술을 받고 아버지의 허리 통증은 나았다.
다만 이미 나빠질대로 나빠진 호흡기 문제와 약 한달간 걷기는 커녕 제대로 서지도 못한 탓에 아버지가 혼자 계실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어머니 회복 기간도 겸해 두분 다 병원에 입원해 있으려고 했는데, 두분이 같이 입원을 해주겠다는 병원은 한방병원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정말 그 어떤 곳도 한 분은 입원되지만 두분 다 입원 시켜주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라, 가족끼리 많은 고민 끝에 한방 병원에 잠시 몸을 맡기게 되었다.
약 2주간 한방병원에 두분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모시고 있었고, 아버지의 호흡기 문제가 점차 발생하는 것이 염려되어 호흡기 의료기기 렌탈도 다시 진행하였으나 갑작스럽게 새벽에 아버지가 의식을 잃으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급하게 응급차를 부르고 응급실로 이동하려는데 그 어떤 응급실도 모두 받지 않겠다고 하더라.
또 한번 의료 대란이 얼마나 많은 부분을 바꿔버렸는지 알게 되었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집에서 미리 전화만 하면 응급실에서 준비해 놓겠다며 쉽게 들어가 검사 및 치료, 필요에 의해서는 입원까지도 가능했던 것이 이제는 의식까지 잃은 분을 다 받지 않겠다는 상황에 정말 화가 난다.
사람들 목숨가지고 저울질 해놓고 이제와서 지들 이익 때문에 복귀하겠다는 전공의와 의대생들. 긴말 않겠다.
제발 너네는 최대한 불행하게 뒤지길 진심으로, 정말 진심으로 바란다.
그렇게 겨우 기존에 다니던 병원 응급실에 그냥 밀고 들어갔는데 그때 아버지가 의식을 되찾으셨다.
원인은 호흡기 문제에 의해 이산화탄소 배출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문제였다.
이대로면 이산화탄소 중독에 의해 돌아가실 상황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연명 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데, 아버지와 어머니 두분은 꽤 오랜시간동안 서로 연명 치료는 절대 그 무엇도 하지 않겠다고 서로 약속을 하셨다.
그걸 자식들에게도 모두 이야기를 해놓은터라, 그때 마침 응급실에 들어간 것은 나였기에 연명 치료는 거부하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자식이 자기 부모가 당장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하는데, 이걸 연명 치료를 하지 않겠다라는 확실한 답을 하는게 정말 힘들더라.
순간 엄청나게 흔들렸지만, 그때는 아버지의 의식이 돌아온 상태였기에 환자 본인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며 병원 측에서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역시나 완강하게 연명 치료는 그 무엇도 하지 않겠다고 하신다.
연명 치료를 한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 대부분이 후회하는 글이였고, 나 역시 연명 치료를 한 순간 돌아가시기 전까지 중환자실에서 혼자만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시는건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막상 그게 닥치니 선뜻 대답하기 어렵더라.
아버지의 의사를 듣고 간호사는 돌아가고, 나는 아버지께 다시 되물었다. 정말 그 무엇도 하지 않으실건지.
아버지는 덤덤하게 해봐야 가족들끼리 싸움이나 나고 돈만 쓰고 누구 하나 좋을게 없다며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 말에 나는 그러면 우리 2년만 더 살아보자고 지금 이산화탄소 배출을 위해 호흡을 길게 뿜어내는 도구 열심히 하자며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렇게 아버지의 의식이 돌아왔기에 입원할 다른 병원을 알아보던 중 응급실에서 이 병원에 바로 입원할거라고 한다.
7월 처음부터 이렇게 좀 하지...
그렇게 아버지를 입원실로 옮기고 정신이 약간 왔다갔다 하시긴 했지만 그래도 다시 말씀도 잘 하셨고 어머니와도 완전 밝게 웃으며 통화하시는 것까지 확인하고는 잠깐 집으로 돌아갔다.
아버지도 자기 괜찮다며 간병인도 있으니 집에 가서 내일 오라고 하셨고, 어차피 병원에 보호자는 간병인 포함 1명만 상주 가능하기에 나는 집에 돌아갔다.
그리고 약 3시간 후 누나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다시 의식을 잃으셨다고 한다.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가보니 아버지가 의식을 잃으신 상태였고 대형 병원이였기에 간호사들이 열심히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나는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다른 가족들에게 모두 연락해서 지금 바로 내려오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연락을 했고, 그날은 계속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
의식은 조금 돌아오긴 했지만, 3시간 전 나와 그렇게 밝게 웃으시며 이야기했던 모습은 전혀 보이지 못했다.
이미 산소호흡기는 장착이 되어 말씀하시는 내용을 우리가 잘 알아듣기 힘든 상황이였고, 우리가 하는 말도 명확하게 알아듣지는 못하는 상황이였다.
그래도 아직 어떤 상황인지는 의식할 수 있었기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저녁 늦게까지 있었고, 서울에서 온 다른 가족이 저녁에 도착하여 자신들이 밤샐테니 나와 교대를 하자고 해 교대를 했다.
그렇게 다음날 아침에 병원에 다시 찾았으나 아버지가 어제와 완전히 다르게 아예 의식을 찾지 못하신다.
이미 이산화탄소에 중독되어 의식을 더이상 찾지 못하는 상황까지 가버린터라 며칠 안에 돌아가실 상황이 되었다.
어제 밤에는 그래도 말도 좀 하셨다고 하는데, 내가 아침에 찾아 뵈었을때 처음에는 주무시는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이건 주무시는 상태가 아닌 것 같다 싶더니 전혀 의식을 찾지 못하셨다.
이때부터 정말 오만가지 모든 것이 다 후회로 돌아온다.
사소한 것부터 꽤 큰일까지 정말 모든 일이 다 후회로 돌아와 가슴에 박힌다.
왜 그렇게 못했을까. 왜 그렇게 안했을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다 후회에 후회의 연속이다.
후회한다고 바뀌는 것은 없다. 기본적으로 이성적인 성격이고 부모님이 돌아가실 것까지 다 마음의 준비를 나름 했다고 생각했음에도 이게 막상 현실이 되면 정말 모든 것이 다 후회로 돌아온다.
그렇게 아버지는 의식을 찾지 못하시고 3일 후 돌아가셨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계속 휴가를 썼기에 다음날은 출근을 해야 할까...라고 고민하다가 그냥 금요일까지 휴가 쓰고 아버지 간병을 하자라고 마음 먹고 임종을 봤다는 것. 그때 출근해서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면 정말 최악의 기분이였을 것 같다.
돌아가시기 전날은 하루종일 아무런 미동도 없고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던 분이, 돌아가시는 날 새벽에는 그렇게 소리를 내며 아파하시더니 아침이 되어 다시 조용해 지셨다가 오후에 병실을 옮기자마자 바로 돌아가셨다.
그간 효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아들이 그래도 아버지의 마지막 임종을 지켜봤습니다. 임종 전 단 둘이 남아 있을 때 속에 있던, 그동안은 하지 못했던 진심의 이야기를 많이 내뱉었습니다. 그 말이 아버지에게 닿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닿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며 그때 느꼈던 오만가지 후회와 기억들이 다시 되새겨짐에도 이 글은 반드시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 의식이 없던 와중에도 제가 드렸던 말에 잠시나마 반응을 보이셨던 그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그때 드렸던 약속 반드시 제가 죽을때까지 지킬테니 그곳에 가셔서 꼭 지켜봐 주세요. 그곳에서는 제가 드린 말처럼 나빴던 기억은 모두 잊으시고 좋았던 기억만 간직하셔서 꼭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 정말 너무 행복했고 감사했습니다.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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